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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cation

세계 여러 나라의 공교육

by 딱알아듣게 2023.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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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공교육이란 공익을 목적으로 하며 국가와 같은 공적인 주체에 의해 이루어지는 교육을 말합니다. 공적인 재원, 절차에 따라 운영되며 교육의 공공적인 의의에 기반합니다. 공교육제도는 어떻게 생기게 되었을까요? 19세기 이후 산업이 발달하고 사회구조가 변화하면서 높은 계층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던 교육이 일반 대중, 즉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전에는 신분주의 아래에서 종교단체나 개인에 의해 상류층에게 이루어졌던 교육이 대중화된 교육으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그럼 세계 여러 나라의 공교육의 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독일

독일은 세계에서 최초로 공교육제도를 수립한 국가입니다. 18세기 후반에 교회의 감독 아래에 있었던 학교를 법을 지정하고 국가가 감독하여 공교육을 수립합니다. 독일의 공교육은 국민을 그 신분에 머무르게 하려는 의도로 민중교육을 제한하였습니다. 이러한 의도를 가진 독일의 공교육은 사회적 변화(프랑스 혁명, 산업혁명, 독일제국 통일)가 일어나면서 그 기반에 있는 자유주의나 민주주의 사상과 대립하고 뒤섞이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19세기에 그 기본적인 성격은 변화하지 않고 초·중등 공교육이 보급됩니다. 이렇게 생긴 학교의 제도는 상류 계층을 위한 학교와 서민 계층을 위한 학교로 나뉜 복선형이었습니다.


프랑스

프랑스는 1860년에 나폴레옹이 제국대학령을 통해 공교육 제도를 수립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지도층 계급의 교육에 한정되어 있었고 일반 대중을 위한 교육은 종교단체가 담당하였습니다. 그 후 차차 시민계급의 힘이 커짐에 따라서 7월 혁명 이후 1833년에 초등교육법이 지정됩니다. 이 법에 따라 공립소학교가 설립한 이후 1881년에는 공립소학교를 학비를 내지 않고 다닐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다음 해에 6세~12세까지를 의무교육으로 정하고, 종교 교육을 뺀 공교육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미국

미국은 1830년경부터 산업발달이 뚜렷해지고, 도시화가 확산됩니다. 또한 노동 계급이 생겨나고 선거권이 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이러한 이유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식을 대중들에게 널리 펴서 많은 사람들이 누리게 할 필요성이 강조됩니다. Horace Mann의 노력으로 공교육 운동이 전개되어 1852년에는 의무교육법이 지정됩니다. 이후 1890년까지 남부 주들을 뺀 28개주에 의무교육제도가 생겨나게 됩니다. 19세기초 중등교육에서는 공립학교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 1821년 보스턴에 공립고등학교가 최초로 생깁니다. 이후 1874년에 중등교육에 대한 공적 재원 지출이 인정되고 공립고등학교가 세워졌습니다.


영국

영국은 18세기까지는 교육을 개인에게 일임하고 국가는 개입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사회구조가 크게 바뀐 것을 계기로 교육제도가 필요성이 커지게 됩니다. 1832년에 선거법이 바뀌면서 자유주의가 강조되고 민중을 교육하는 데에 국고보조금이 쓰이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 국고보조금이 당시 민중교육을 맡았던 종교단체에 주어졌습니다. 민중교육이 퍼지면서 국고보조금도 점점 많아졌습니다. 이에 1856년에는 '결과에 따른 지불' 원칙에 따라 국가가 교육감독권을 강화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1870년의 교육법에서 공립학교를 설립하였고, 1876년에는 의무교육제도도 정하였습니다. 그리고 1902년에는 지방교육 당국을 지방자치단체에 수립하여 학교에 대한 감독권을 갖게 했습니다. 이로써 영국의 공교육 제도는 초등교육 단계에 있어서는 기반을 다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국공립이나 사립학교에서 국가가 주도하여 의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입니다. 만 6세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공교육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이는 중학교 3학년까지 9년간 의무교육으로 이루어지며, 이후 최종적으로 고등학교 3학년까지 공교육은 이루어집니다. 학제는 6-3-3-4제를 따르고 있으며 모든 학생들이 동일한 학제를 따르는 단선형 학제입니다. 

 

대한민국은 근대에 다다르면서 신분제가 점차 사라지고, 종래에 지배층만의 특권이던 교육이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받을 수 있게 바뀌게 됩니다. 한국의 교육열은 높았습니다. 교육으로 자녀들 출세시키고자 했던 한국 부모들이 열심히 돈을 벌어 자식들의 학비를 대며 대학까지 공부를 시켰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휴전이 되었을 때는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선진국으로 유학을 갔고 학위를 딴 후 귀국하였습니다.

 

미군정기에는 현대 한국 교육의 바탕이 마련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군정은 남한을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바꾸어 소련을 견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를 위해 미군은 한국의 미국 유학생을 발탁하여 미군정 학무국과 한국교육위원회, 조선교육심의회에 배치하였습니다. 미군정은 인문, 실업학교의 학제 분리 체제였던 복선형 학제를 단선형 학제로 탈바꿈시켰습니다. 또한 미국식 6-3-3-4제 학제를 도입하였고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를 의무교육으로 실시했습니다.

 

정부 수립 후에는 이승만 정부 때 대한민국 최초의 교육과정인 제 1차 교육과정이 공포되었습니다. 박정희 정부 때에는 근대화를 위한 '교육을 통한 인간 개조 운동'을 펼쳤습니다. 또한 중학교 입시를 없애고 시험 없이 진학하게 하였으며, 대학입학예비고사를 도입하여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제4공화국 시절에는 고등학교 평준화, 대학교수 임용제, 실험대학제를 추진하였습니다. 전두환 정부 때에는 과외 금지, 대학본고사 폐지, 대학 입학정원 확대 등을 통해 강압적인 통치에 대한 회유책을 펼쳤습니다.

 

김영삼 정부 때에는 '교육개혁위원회'가 설치되어 개혁안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교육을 도구로 사용하고자 했습니다. 이때 생활기록부를 입시에 반영하는 수시가 도입되고 필답고사 폐지, 위성교육방송(현재의 EBS) 제공 등이 실시되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스스로를 '교육 대통령'으로 칭하며 '3불 정책'을 펼쳤습니다. '3불 정책'은 대학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교육 개혁이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교육혁신위원회를 설치하여 과도한 입시 경쟁과 대학 서열화를 타파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학력 격차에도 불구하고 동등한 기회를 주어 '보통교육'을 실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 권력화, 서열화의 벽을 뚫기는 쉽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