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후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은 수많은 변화를 겪었고 현재도 여전히 몇 년에 한 번씩은 새로운 교육과정이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까지 교육과정이 어떻게 변천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
1894년 갑오개혁을 계기로 한국의 근대 교육은 시작되었습니다. 1881년, 별기군이 조선의 국방력을 높이기 위해 설치되면서 서양식의 군사 훈련과 함께 외국어, 과학 교육도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별기군의 훈련과 교육은 임오군란으로 중단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여러 가지 실험적 시도가 갑오개혁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19세기말에 이르러서는 종교 단체(천주교, 개신교)가 종교를 전파하기 위해 교육과 의료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이화학당, 배재학당, 광혜원 등이 이 시대에 세워진 최초의 근대 교육 기관이었습니다. 이 학교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의 대학교들의 토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갑오개혁으로 국가의 체제가 근대적으로 바뀌면서 민간에서 이루어지던 위와 같은 시도를 국가가 주도하는 공교육으로 통합시켰습니다. 이것이 '갑오교육개혁'입니다. 이 개혁에 따라 '학부'라는 국가 교육 담당 기관이 생겨났습니다. 또한 1895년에는 지금의 초등학교인 '소학교'와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사범학교'가 생겼습니다. 이 때 다양한 사립학교도 생겨나면서 1900년에 이르러서는 사립학교법이 제정됩니다.
일제강점기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으로 일본 제국에 대한제국의 주권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교육은 일본의 영향 아래에 있게 됩니다. 일본이 1911년에 '조선교육령'을 선포하고 이를 시작으로 한국의 교육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였습니다. 조선교육령에 따라 소학교는 보통학교로 바뀌고 중학교, 고등보통학교, 실업학교가 새로 생깁니다. 1~4차에 이르는 조선교육령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차 조선교육령_1911년
일본은 제1차 조선교육령에서 교육칙어의 취지에 따라 한국인과 일본인에 대한 차별적인 교육정책을 펼쳤습니다. 여기서 교육칙어란 1890년에 공포된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담은 군국주의 교육 방침이었습니다. 이 때 보통학교(초등교육기관)는 4년 제로 운영되고 고등교육기관은 없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일본이 인간을 쉽게 복종하게 만드는 인간교육과 최소한의 사회적 능력을 가진 인간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1919년 3.1 운동 이후에는 식민지정책이 문화정책으로 바뀌면서 1920년에 보통학교 수업 연한을 6년으로 연장하였습니다.
제2차 조선교육령_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으로 일본은 '일시동인' 즉, 일본인과 조선인에게 같은 교육을 하는 것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한국인을 대우해 주려던 것이 아니라 이미 조선 식민통치의 바탕이 충분히 마련되었다고 보고, 일본과 조선을 같게 만들려는 '동화정책'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이 때 학제는 보통학교(현 초등학교) 6년, 고등보통학교(현 중학교) 5년, 여자고등보통학교 4~5년을 기본으로 실시하였습니다. 또한 대학에 관한 규정을 새로 만들어 1924년에 고등교육기관인 경성제국대학이 만들어졌습니다.
제3차 조선교육령_1938년
중일전쟁이 1937년에 일어나면서 일제가 한반도의 '병참기지화'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병참기지화 정책은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침략전쟁을 하기 위한 병참기지로 한반도를 이용하기 위해 취한 정책을 말합니다. 이에 맞춰 제3차 조선교육령도 만들어졌는데, 한국인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동화정책 강화를 담은 것이었습니다. 이때 보통학교와 소학교, 고등보통학교와 중학교, 여자고등보통학교와 고등여학교로 이원화되어 있던 학교 이름이 소학교, 중학교, 고등여학교로 일원화되었습니다. 그리고 황국신민화 교육을 강화하고 조선어를 선택과목으로 낮추었습니다. 1941년에는 조선교육령을 개정하였는데 이때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바꾸고 교과목도 국민, 이수, 체련, 예능, 직업으로 통합하였습니다.
제4차 조선교육령_1943년
제4차 조선교육령은 전시체제에 맞게 학교교육을 바꾸는 것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학제를 보면 중학교, 고등여학교를 4년으로 줄였습니다. 또한 조선어 과목을 아예 없애고 이를 일본어 교육으로 대체했습니다. 중학교와 고등여학교의 경우에도 국민, 이수, 체련, 예능, 외국어로 교과목을 통합하였습니다. 위와 같은 교육제도는 전체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초등교육의 경우 전체 조선 주민의 13.8%만 접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교수요목기_1945년~1954년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미군정 시기에는 일제 치하의 교육과정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들이 이어졌습니다. 군정청 학무국에서는 일제 강점기의 교육과정을 폐기하고 교수요목 제정위원회를 통해 교수요목과 교과서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교수요목기에는 체계적인 지도와 지력을 기르는 분과주의를 택하였고 교과의 지도 내용을 더 상세히 기록하였으며, 기초적인 능력을 기르는 데 힘썼습니다. 또한 '홍익인간'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애국애족'의 교육을 강화하였습니다. 여러모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데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교수요목은 급하게 만들어져 교과별 주제를 나열하는 수준에서 그쳤습니다. 또한 당시 학생들의 지적능력에 비해 수준이 너무 높았다는 평이 있습니다. 교과목별 수업시간은 교수요목에 바탕을 두었으나 학교장이 융통성 있게 운영할 수 있어서 학교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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